초창기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역사적으로 트렌토는 여러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와 시민사회의 대화가 이루어진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끼아라 루빅의 ‘일치의 이상’이 이곳에서 형성되었으며 70여 년 동안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개인의 삶 안에서, 그리고 종교, 정치, 경제, 예술, 법, 스포츠 및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형제애를 촉구하고 널리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트렌토를 방문하여 ‘하느님의 선물’을 주신 현장을 체험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콜라레운동의 생생한 역사와 이야기들을 트렌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련된 끼아라 루빅의 역사적 발자취를 소개하며, 아울러 1949년 여름 포콜라레운동의 영성이 좀더 명확한 모습을 갖추게 되고 현재까지 복음말씀에 담긴 정신이 일상생활에서 면면이 실현되고 있는 마리아폴리가 처음 열린 프리미에로 계곡의 역사적 현장을 소개한다.
방문객들을 위한 자세한 안내는 아래 지역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지 사이트로 이동 Azienda di Promozione Turistica di Trento, Monte Bondone e Valle dei Laghi
┘트렌토 Trento 기행
▲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할 수 있습니다
1 끼아라 생가
1920년1월22일 끼아라 루빅이 태어난 프레포시투라Prepositura 가(街) 41번지 2층. 네 남매의 둘째로 태어났으며 가족은 1930-31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2 산타 마리아 마조레S. Maria Maggiore 성당
끼아라가 실비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당으로, 유명한 트렌토 공의회의 마지막 섹션이 열린 곳이다.
3 옛 베르디Verdi초등학교
어린 실비아가 공부했던 쥬세페 베르디 초등학교. 현재 이곳은 트렌토 대학의 사회과학부가 자리잡고 있다.
4 옛 마리아 밤비나Maria Bambina 보육원
보르시에리Borsieri 가(街) 4번지에 있는 마리아 밤비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의 넓은 놀이터는 실비아는 물론이고
많은 어린 이들이 즐겨 놀러가던 장소로 카롤리나 수녀님이 어린이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로 그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5 거룩한 성체Chiesa Santissimo 성당
매주 금요일 카롤리나Carolina수녀는 어린 아이들을 트레 노벰브레Tre Novembre 길 26번지에 있는 이곳 성당으로 데려와 성체조배를 하게 하였다.
어린 실비아는 ‘주님, 저에게 당신의 빛과 따스함을 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6 토리오네Torrione 가(街)
이곳에서 젊은 실비아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몇 가지를 깨닫게 된다.
7 고챠도로Gocciadoro 17번지
끼아라의 가족이 1934년부터 1944년 5월 13일 대공습으로 집이 파괴되어 떠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이 기간은 끼아라가 새로운 빛의 카리스마를 점차적으로 깨닫는 체험을 했던 시기였다.
8 로스미니Rosmini 교육 전문대학
끼아라는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말파티Malffati 가 2번지에 있는 이 대학에 다니면서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8살에 첫 소임지로 발 디 솔레Val di Sole에 있는 학교에서 가르쳤다.
전쟁 중이던 1941년부터 1943년까지는 카푸친회에서 운영하는 코뇰라Cognola의 오페라 세라피카Opera Serafica 학교에서 가르쳤다.
9 성 비질리오San Vigilio 주교좌 성당
끼아라는 트렌토 시민들의 믿음과 문화 및 역사가 담긴 이 성당을 사랑했다.
성당 오른쪽 뒤 편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 아래서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철학을 공부했다.
10 "마돈나 비앙카Madonna Bianca(하얀 성모님)" 마을
1943년 어느 추운 겨울 날, 어머니를 사랑하기 위해 베로나Verona 대로 끝에 있는 가게로 우유를 사러 가는 길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하늘이 열리며 누군가가 이렇게 부르시는 것 같았다. “너에겐 목숨이 오로지 하나뿐이다.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바쳐라.”
11 카푸친Cappuccin 수도원
카푸치니 길에 있는 이 수도원의 경당에서 1943년 12월 7일 고해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끼아라는 종선서원을 하였다. 이는 포콜라레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12 안드로네Androne 구역
트렌토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끼아라와 동료들은 매일 큰 가방에 생활 필수품들을 넣어 이들에게 전달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했다. 트렌토시의 사회적 문제 해결이었다.
13 트레 포르토니Tre portoni(세 개의 문)
아치 형태의 이 문 옆에 있는 산타 크로체 Santa Croce가에서 끼아라와 친구들은 수시로 만났다.
14 고챠도로Gocciadoro 숲
1944년 5월 13일의 대공습으로 집이 파괴되자 끼아라의 가족들이 피신하여 하룻밤 노숙했던 숲으로, 끼아라에겐 ‘별과 눈물의 밤’이었다.
다음날 가족은 숲을 떠나 피난을 가고 끼아라는 다시 트렌토 시로 내려왔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구절에서 빛과 함께 힘을 얻게 된다.
15 트레 노벰브레 3 Novembre 길
폐허 된 도시로 들어가는 중, 한 여인이 다가와 끼아라의 어깨를 붙들고 미친듯이 부르짖는다. “네 명이나 죽었어!"
그를 위로하며,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자신의 고통 대신 인류의 고통을 끌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곳이다.
16 옛 성녀 끼아라Santa Chiara 병원
현재 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성녀 끼아라 병원 옛 자리이다. 1944년 5월 14일, 당시 의과 대학생이었던 오빠 지노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빠는 처참한 주검들을 보여주며 “보아라, 모든 것이 허무하고 허무하다!”고 말했다.
17 카푸친 광장Piazza Cappuccini 2번지
1944년 가을 끼아라가 동료들과 함께 거처했던 아파트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작은 집”la casetta이라 불렀다. 사실상 첫 포콜라레가 된 곳이다.
18 방공호
"작은 집"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바위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끼아라와 동료들은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이곳으로 대피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11번이나 대피하기도 했다.
그들은 오로지 작은 성경책만을 가지고 들어갔다. 주변의 모든 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복음서가 가르쳐 주었다.
19 성녀 끼아라 성당
하루는 가난한 이들 한 사람에게 42호(한국 기준 약 270mm)짜리 남자 구두 한 켤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끼아라와 동료들은 이 성당에 들어가 “그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신 당신께 드릴 42호 구두 한 켤레를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렸다.
성당에서 나오자 마자 두차 칼데라Duccia Caldera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상자 하나를 건네서 열어보니 42호 구두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20 트라바이Travai 가(街) 74번지
공습을 피하여 끼아라와 동료들은 이 집의 어두운 지하실에 피신하곤 했다.
희미한 촛불 아래 그들은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복음말씀을 함께 읽었고 자신들은 이 말씀을 위해 태어났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21 카푸친회 경당Chiesa Cappuccini
폭격으로 파괴된 이 경당의 제대방에 모셔진 성체 앞에서 끼아라와 동료들은 예수님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바로 1945년 10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22 피에라Fiera 광장의 대주교 관저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다."는 복음말씀에 따라 끼아라는 1945년 트렌토의 카를로 데 페라리Carlo De Ferrari 대주교님께
당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던 자신들의 삶을 소개하러 대주교 관저에 간다. 대주교는 그들에게 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23 성 마르코S. Marco성당
1942년 10월부터 마사이야Massaia 강당 근처에서 끼아라는 매주 토요일 새로운 것들을 나누기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첫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그후 점차적으로 포콜라레 첫 공동체가 형성하게 된다.
A 제레미아Geremia 관서
벨렌짜니Belenzani가 19번지에 있는 건물로, 트렌토 시청이 위치한 곳이다.
B 평화공원
2001년 9월 11일 테러 사건 이후 크리스피Crispi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트렌토 시를 평화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사랑의 주사위 놀이를 시작했다.
슈미트Schmid와 잔도나이Zandonai 및 다른 많은 학교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였고 이들의 구상에 호응하여 조성된 공원이다.
┘피에라 디 프리미에로 Fiera di primiero 기행
▲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할 수 있습니다
1 카푸치니 성당 CHIESA DEI CAPPUCCINI
1949년 7월 16일, 이 성당에서 끼아라와 이지노 죠르다니(Igino Giordani: 국회의원, 언론인, 저술가)는 성체를 모신 후 일치의 서약을 한다.
미사 후 끼아라는 다시 성당 안으로 돌아와 감실 앞에 앉았다. 끼아라는 그때를 이렇게 서술한다.
"마치 주님께서 하느님의 왕국을 내 영혼의 눈 앞에 펼쳐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소위 우리가 "49년 천국"이라 부르는 신비적 체험의 시작이다.
2 아르치프레탈레 라 피에베 성당 CHIESA ARCIPRETALE LA PIEVE
이 성당은 마리아폴리 시민들이 매일 아침 미사와 저녁 기도를 드리던 곳이다.
일정 기간 동안 열리는 이 마리아폴리에서는 지켜야 할 일종의 규범이 있었는데, 바로 참가자들이 살아야 하는 ‘서로 간의 사랑’이다.
이는 형제애를 태어나게 하며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친교와 나눔으로 구체화되었다.
1959년 8월 22일, 이 성당에서 27 개국을 대표하는 1,000여 명의 마리아폴리 시민들이 중국어를 포함한 9개 언어로 마리아께 각기 자신의 나라를 봉헌하였다.
이는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곳에 참석한 몇 명의 국회의원들은 ‘정치계’를 마리아께 봉헌하였으며,
이후 마리아폴리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이듬해부터 여러 나라에서 열리게 된다.
3 투라 가문 가택 CASA DEI TURRA(COL)
마리아폴리에 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증가함에 따라, 프리미에로 주민들은 관대하게 그들의 집을 제공하였다.
침대와 매트리스는 따로 분리하여 두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57년부터 ‘59년 여름 마리아폴리 중, 끼아라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이 집에 머물렀다.
마리아폴리에는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그중에는 당시 강론으로 유명한 롬바르디 신부나 유명한 몇몇 주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마리아폴리의 심장부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Chiara는 어느 날 영속하는 마리아폴리 즉 ‘소도시’가 태어날 수 있다고 예견한다.
실제로 끼아라는 마리아폴리가 끝난 후, 1956년 9월 22일자, 간행물 ‘치타 누오바 (Città Nuova)’ 잡지에 포콜라레 소도시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하는 기사를 썼다.
현재 전 세계 19개국에 각기 그 특성이 다른 22개의 소도시가 존재한다.
4 포아 콜로냐 COLONIA POA
PONTIFICIA OPERA ASSISTENZA 교황청 복지 기관
1950년대 후반 마리아폴리가 열렸던 장소로 여러 부류의 사람과 단체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일치 영성에 깊이 들어가면서 노래와 코미디를 통해 복음의 체험담을 나눈 곳이다.
매년 프리미에로 마리아폴리 참가자는 점점 더 많아지고 ‘59년 여름에는 12,000여 명이 참여하였다.
5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 CHIESA DI SAN SEBASTIANO
매일 오후 끼아라는 여자 포콜라리나들과 함께 이 성당에서 묵상을 하였다.
그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신앙에 대한 특별한 깨달음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이 현실들을 즉시 다른 포콜라리나들에게도 전해주었다.
6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 BAITA PARADISO
1949년 여름, 끼아라와 그의 친구들은 친구 중 하나인 리아Lia Brunet가 유산으로 상속받은 이 오두막집에 휴가를 보내러 오게 된다.
이 집은 작은 현관과 주방, 그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다락방은 옥수수와 콩을 말리는 곳이었는데 포콜라리나들은 이 곳에 군용침대 같은 철재로 된 침대를 나란히 놓고 침소로 사용했다.
그들 사이의 서로 간의 사랑이 무엇보다 두드러졌으며 특별한 은총과 빛의 시기를 이 집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 때를 기억하기 위해 이 집을 "바이타 파라디소Baita Paradiso(천국의 은신처)"라고 부르게 된다.
끼아라 루빅 길 Via Chiara Lubich
2019년 8월 10일 피에라 디 프리미에로 지자체는 “바이타 파라디소Baita Paradiso가 위치한 이 거리를 “끼아라 루빅 길”로 명명하였다.
7 산 빅토레 성당 CHIESA DI SAN VITTORE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산골짜기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짧은 산책길의 목적지로,
이곳에서 끼아라는 먼 산 아래로 사라진 석양을 바라보며 그로부터 퍼져나온 눈부신 빛줄기는 "성부의 찬란함”을 드러내는 말씀이신 ‘성자의 표징’이라 하였다.
그 빛줄기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다른 사람들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마침내 태양이신 하느님께 이르게 된다.
8 빛의 성모님 경당MADONNA DELLA LUCE
보알레티 마을에 세워진 프리미에로 첫 수력발전소 옆에는 ‘마돈나 델라 루체’라는 성모님께 봉헌된 작은 성소(聖所)가 있다.
이 경당에 이르는 자연 속의 산책길을 걸으며 끼아라는 성모님에 대한 영감을 받아 고결한 묵상글을 적게 되며, 후에 이 묵상에 "마리아, 인류의 꽃"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9 벨슈페르그 초원과 호수PRATI E LAGHETTO WELSPERG
발 카날리Val Canali(카날리 산골짜기)의 유서 깊은 벨슈페르그 별장 옆에 있는 평화로운 호수와 초원은 마리아폴리의 빠질 수 없는 산책길 중 하나이다.
호수에 비쳐진 산 봉우리를 보면서 철학의 애호가인 끼아라는 ‘이데아’와 ‘실체’의 관계에 관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재해석한다.
10 캄파닐레 마리아폴리 CAMPANILE MARIAPOLI
발 카날리 지역에 속하는 트레비소 대피소 바로 위에는, 하늘을 치솟는 거칠고 험한 산봉우리들이 팔레 디 산 마르티노 산맥에 줄지어 모여 있다.
1959년, 토나디코 출신인 두 명의 산악인 미켈레 가덴츠와 툴리오 보나트가 이들 중 하나의 산봉우리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마을을 찾아 준 마리아폴리 시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산봉우리에 캄파닐레 마리아폴리Campanile Mariapoli(마리아폴리 종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11 세간티니 전망대피소BAITA SEGANTINI
아름다움의 장관인 세계 유일의 돌로미티 산 지역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팔레 디 산마르티노 산맥은 마치 뾰족한 첨탑과 바위로 만들어진 찬란한 성당을 상상하게 하는 절경을 제공해 준다. 그중 세간티니 대피소는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이다.
마리아폴리 중 즐길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자연은 끼아라에게 큰 영감을 준다. "나는 피조물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