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콜라레 운동이란
포콜라레Focolare운동은 20세기에 가톨릭교회 안에 태어난 새로운 영성 운동 단체이다. 이 운동의 창시자인 끼아라 루빅은 스물세 살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 자신의 온 일생을 전적으로 봉헌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끼아라에게는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이 날이 바로 1943년 12월 7일, 오늘날 전 세계에 퍼지게 된 포콜라레운동의 탄생일이다.
당시 끼아라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으므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꿈이 무너지게 된다. 또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자 했던 친구는 약혼자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예쁜 집을 꾸미고 싶어했던 친구는 폭격으로 인해 자신의 집과 학교를 비롯한 주변의 건물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전쟁의 비극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사라지는 허무한 세상에서, 하느님 뜻을 따르던 끼아라와 친구들은 어떤 폭탄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임을 깨닫게 된다.
전쟁(제2차세계대전)은 하루에 11번이나 방공호로 피신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늘 죽음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들은 폭격을 피해 방공호로 갈 때면 언제나 복음서를 가지고 갔다. 한번은 방공호에서 복음서를 펼쳤는데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는 구절을 읽게 된다. 그 순간 끼아라와 함께 모여 있던 친구들은 하느님을 선택하려 한다면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복음말씀 그대로 살고자 했다.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복음서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가난한 이들 중 한 사람에게 42호(한국 기준 약 270mm)짜리 남자 구두 한 켤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 중이었던 당시에 구두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끼아라는 성당에 들어가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드리며 42호짜리 구두를 청했다. 기도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오자마자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상자 하나를 건네서 열어보니 42호 구두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청하라 받을 것이다’라는 복음말씀이 현실이 됨을 확인하는 일화이다. 이와 같이 복음을 실천한 경험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끼아라와 첫 친구들에게는 오직 복음말씀만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 어른이든 아이든, 많이 배운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주위 사람들에게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끼아라에게 왜 모든 이를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단순하게 자신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답해 주었다. 끼아라와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들처럼 살고자 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트렌토 시에 사는 5백여 명의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복음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포콜라레(Focolare)는 이탈리아어로 ‘벽난로’를 뜻한다. 서양에서 벽난로는 집 전체를 따뜻하게 데우는 도구이기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끼아라와 친구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트렌토 시의 사람들은 이들이 사는 집을 ‘포콜라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로부터 하느님 사랑의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포콜라레운동을 ‘마리아사업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아 세상에 영신적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시게 함으로써, 마리아가 지속적으로 이 세상에 현존하시기를 지향한다는 뜻에서 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준 받은 이름이다.
어느 날 폭격을 피해 어두운 지하실에 모여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복음서를 펼쳤는데 그때 특별히 눈에 띈 구절이 있었다. “아버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였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성부께 바친 기도였다. 끼아라는 이 말씀을 접했을 때 특별한 은총으로, 여기서 말하는 ‘일치’를 위해 자신들이 태어났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일치를 이루도록 기여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포콜라레운동을 ‘일치의 영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일치의 영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현재는 180여 개국에서 포콜라레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9년에 포콜라레 본부가 문을 열었고, 5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많은 평신도와 수도자, 성직자, 어린아이와 청소년, 젊은이, 어른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끼아라와 그 친구들이 했던 것처럼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말씀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구현함으로써 모든 이들과의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